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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김창수 칼럼

막걸리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벼농사를 주로 했기 때문에 쌀과 곡자를 원료로 하는 쌀술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따라서 탁주의 정확한 기원은 분명치 않으나 오랫동안 약주와 탁주의 구별은 없었던 것이 사실이며 막걸리라는 명칭은 마구 걸렀다는 뚯에서 유래한 둣하다.
이외에도 막걸리는 지방 방언으로 대포,막걸리,모주,젖내기술,탁주배기, 탁배기, 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우리 고유의 술인 막걸리를 언제부터 빚어 먹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일설에 의하면 광해군 때 부터라고 한다.
인목대비의 아버지되는 김제남이 영창대군을 추대하려고 한다는 모함으로 잡혀 죽고 그 부인되는 정씨는 제주도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제주도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감포라는 마을에 살게된 정씨는 살길이 막막하여 그의 시녀가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웃에 있는 술집에 부탁하여 방문주를 뜨고 남은 지게미를 얻어 여기에 물을 붓고 걸러서 재탕한 술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였다.
지금 한창 농사철이다.지금이야 농사를 농기계에 의해서 짓지만 필자가 초.중학교 다닐때만 하여도 소를 이용하여 논밭을 갈아서 농사를 지었다.그야말로 중노동이었다.일하는 중간에 샛참으로 막걸리를 한 잔씩하였다.
일이 힘이 들어서 술힘을 빌렸다
모내기 하면서 술이 한잔 들어가면 노래도 하면서 지친몸을 달래기도 하였다.당시에는 집에서 술을 빚는것은 금지되었다.가끔씩 관청에서 단속을 나와서 집안 곳곳을 샅샅히 뒤지는 것을 보았다
단속이 나오면 당산에 올라가서 술 뒤지려 나왔다고 소리를 질러 동민들에게 알려 주었던 기억이 난다.지금은 쌀 막걸리를 비롯하여 술 종류가 아주 다양하다.
어릴쩍 어머니가 술을 빚는것을 보았다.빚고 난후에 남은 술 지게미를 맛 보았다.
우리민족과 함께 역사를 한 막걸리는 술 이외에도 사람 사이의 정을 나누는 매개체 역할을 하였다
한 잔의 술이 아니라 사람에 정을 서로 주고 받았던 것이다.
어린시절 어머니가 빚었던 막걸리가 그리운 계절이다.

2014.6.19 목요일
김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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