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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김창수 칼럼

첫사랑^^

  나와 그녀와의 첫사랑은 고등학교 2학년때 시작되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J 였다.
나는 남산동에 자취를 하였고 그녀는 김천여교 옆 모암동이라는 곳에서 자취를 하였다. 
중학교 때까지는 별로 친하게 지내지 않았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자취를 하고부터 친해지기 시작하였다. 자취생활을 하면서 그녀의 자취방에 가서 공부도 같이하고 밥도 같이 먹어면서 서로 사랑을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필자는 육군제3사관학교를 진학하게 되었고 그녀는 여러가지 사정으로 대학진학을 하지 못하고 서울로 취직을 하러가게 되었다.
입교하기전 둘이서 1980년 7월달에 대전 계룡산에 놀러를 갔었다.
온 산이 푸르름으로 뒤덮혔었다. 
그날 비가 내려서 우산을 받쳐들고 손을 꼭 붙잡고 데이트를 하였다. 
계룡산이 별로 높지는 않았었다. 우리는 서로의 앞날의 희망을 이야기 하면서 산을 천천히 걸어올라 갔었다.거기서 서로 사랑에 감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늦은 점심 식사를 하고 대전역으로 와서 헤어지게 되었다.그녀는 서울에 오빠집으로 간다고 하였다
열차표를 사서 기차 플렛포옴까지 배웅을 하였다. 막상 헤어지려고 하니 발걸음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플렛포옴에서 손을 꼭 잡고 ""J 야 서울 올라가서도 건강해야 한다""
편지도 자주 하면서~
그녀를 기차에 태워주고 나는 집으로 돌와왔다.
몆일동안 그녀 생각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였다
상사병에 걸린 것이었다.
군대생활을 마치고 나는 경남 대우조선에 입사를 하였고 그녀는 부산으로 내려와 엄마와 함께 지내면서 직장생활을 하였다.
그때에 편지를 많이 주고 받았다
그녀는 내게 항상 ""수야는 잘 할수 있어"" 하면서 항상 희망의 메세지를 내게 주었다.
거제도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나와서 데이트도 많이 하였다. 
해변을 거닐면서 젊은날에 사랑을 마음껏 즐기었다.

1988년 나는 회사를 퇴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집으로 올라와서 백수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던중 그녀가 결혼을 한다고 전화가 걸려왔다.
머리가 멍하였다.
나는 바로 부산으로 내려가서 그녀를 만나 ""결혼 포기하면 안되겠니 ? "" 하면서 물었다
그녀는 이미 날도 잡아놓고 다 하였다고 하였다. 빨리 자기를 잡아주지 않았다고 내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 나이가 28살이었다.이미 물은 건너간 것 같았다. 
다방을 나와 택시를 타고 그녀의 집으로 향하였다
택시 안에서 손을 꼭 잡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결혼식장에는 차마 갈 수가 없었었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흐른후 그녀는 서울로 올라왔었다.
수필가로 등단하여 학원에서 아이들 국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많이 궁금하여서 집에 찾아가서 만났다.
어머니도 뵈었었다. 
그리고도 몇 차례 만났는데 옛날에 감정이 되살아났었다.
자꾸 만나면 서로의 가정에 무슨일이 일어날것만 같았다
서로의 배우자에게도 미안하였다
서로 사랑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그만 만나자"
죽을때 까지 그냥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기로 하고. 
서로를 잊어버리기로 하고 전화번호도 삭제하였다.
결혼후 서울에서는 안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많이 후회가 된다.

2014. 3. 4.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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